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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를, 별생각 없이 열었다.
친구가 “재밌으니까 한번 봐 봐” 하고 보내 준 링크였다.
당구 경기.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깐만 볼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끝까지 보고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
선수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초크를 칠하는 몸짓.
테이블을 걷는 속도.
자세에 들어갈 때의, 등의 각도.
화려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었다.
특히, 자세를 잡고 나서 치기까지의 몇 초.
군더더기가 모두 깎여 나간 듯한,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 몇 초가, 계속 남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다음 날 당구장에 와 있었다
경기에 자극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냥, 왠지 치고 싶어졌다.
큐를 받아 들고, 테이블 앞에 섰다.
공을 늘어놓았다.
자세를 잡으려 했다.
그때, 어제의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절로, 달라져 있었다
초크를 바른다.
평소보다 조금 느릿했다.
어제 본 움직임이, 그대로 손에 남아 있었다.
테이블 주위를 걷는다.
평소에는, 바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오늘은, 한 바퀴 돈 뒤에 멈춰 섰다.
중계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자세에 들어갔다.
등의 각도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조금 더 낮게.
조금 더 조용히.
스스로 정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몸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쳤다.
빗나갔다.
잘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무언가가 달랐다.
자세를 잡고 있을 때의 마음이,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테이블을 걷고 있을 때, 공의 배치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수의 시선을, 따라 그리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라 그려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
어릴 적,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주인공의 걸음걸이가 되어 있던 적이 있다.
격투기 영화를 본 뒤에는, 주먹을 쥐고 걸었다.
야구 영화를 본 뒤에는, 배트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각은 진짜였다.
스크린 속의 그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런 감각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그 선수가, 아직 내 안에 있다
테이블 앞에 서면, 어제 본 중계 영상이 되살아난다.
그 선수가 초크를 칠하던 모습.
걷는 속도.
자세에 들어가는 각도.
치기 전의, 그 고요한 틈.
전부는 따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만이라도 내 안에 남아 있으면, 테이블 앞의 내가 조금 달라진다.
본다는 것
당구는, 직접 치는 것만이 연습은 아닐지도 모른다.
잘하는 사람의 경기를 본다.
그 움직임이, 모르는 사이에 내 안으로 들어온다.
테이블 앞에 섰을 때, 몸이 저절로 그것을 재생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주인공의 걸음걸이가 되어 있던, 그 시절처럼.
어른이 되어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에 중계를 열 때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어떻게 걸을까.
어떻게 자세를 잡을까.
어디에서 멈출까.
테이블 앞에 섰을 때, 그 영상이 몸 어딘가에서 재생된다.
본 것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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