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한 번에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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様

봉투가 마흔 장쯤 쌓여 있다.
하반기 첫머리에 거래처로 보내는 안내장.
받는 사람 이름은 손으로 써 달라고 했다.

회사명. 부서명. 이름.
마지막으로, ‘様(님)’.

서른 장째를 넘겼을 즈음, 펜이 멈췄다.

‘様’가 모르는 글자로 보인다.
왼쪽에 나무 목 변이 있고, 오른쪽에 양이 있고, 그 아래로, 물을 닮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
어느 조각도 낯이 익은데, 한데 모인 모습만이 떠오르지 않는다.

펜촉을 종이에서 살짝 띄운 채, 한동안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글자는 작은 선들의 모임이 되어 간다.

옆자리 사람에게, 이거, 맞는 거죠, 하고 물어볼 뻔하다가, 그만두었다.


게슈탈트 붕괴, 라고 불리기도 한다.
같은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거나, 몇 번이고 쓰다 보면, 형태가 풀어지고, 의미가 손을 떠나간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조금 찾아보았다.

한자를 되풀이해 보여 주면서, 뇌파를 잰 연구가 있었다.
되풀이의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뇌 활동의 모양을 견주어 본 것이다.
글자가 뿔뿔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고 답한 사람일수록, 그 모양이 글자를 통째로 볼 때의 모양에서 멀어져 있었다.
조각조각 나누어 볼 때의 모양에, 가까워져 있었다고 한다.

좀처럼 쓰이지 않는 한자를, 몇 번이고 보여 주는 실험도 있었다.
처음에는, 대답이 점점 빨라진다.
그러다 어느새, 되풀이한 글자에서만, 대답이 늦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익숙해지는 힘과, 풀어지는 힘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이리라.

서른 장째까지는, 분명히, 쓸 때마다 손이 빨라지고 있었다.

읽을 수 있었던 건,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글자 전체를, 한 번에, 슬쩍 보고 있었을 뿐.


선

그날 밤은, 돌아가는 길에 혼자 공을 쳤다.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공 하나가 남는다.
수구와, 목적구와, 포켓이, 거의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자세를 잡는다.
놓치고 싶지 않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 보았다.

수구의, 칠 한 점.
목적구의, 맞힐 한 점.
포켓의 입구.

보고 있는 사이, 세 점이, 저마다 제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것과 어느 것을 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 간다.
큐 끝이, 작게 흔들린다.

친다.
목적구는 포켓 모서리에 맞고, 되돌아 나왔다.

옆 테이블에서는, 나이 지긋한 분이, 자세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잠시 뒤, 문득 자세를 푼다.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수구 뒤에서, 테이블 전체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몸을 낮추어, 큐를 두어 번 앞뒤로 보내고, 그대로 쳤다.
목적구가, 포켓 깊숙이에서 딱 한 번 울린다.

혼자 치고 있으니, 공은 다시 놓을 수 있다.
아까와 같은 배치를, 한 번 더 만든다.

자세에 들어가기 전에, 선 채로 본다.
수구와, 목적구와, 포켓이, 한 줄인 채로, 거기 있다.
몸을 낮추고, 너무 오래 들여다보기 전에, 쳤다.

목적구가, 곧장 안쪽으로 사라져 간다.


받는 사람

이튿날 아침, 남은 봉투를 책상 위에 꺼낸다.

쓰기 전에, 창밖을 잠깐 본다.
맞은편 빌딩 옥상에서, 물탱크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 봉투 한 장을, 통째로 본다.
회사명과, 부서명과, 이름과,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여백.

‘様’를 쓴다.
늘 보던 글자가, 거기 있다.

전부를, 한 번에 보고 있었다.

다음 봉투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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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Liang, Y., Mo, L. & Li, Y. (2026). From holistic to decompositional: Tracking the neural representational shift of Chinese character satiation with representational similarity analysis. *Brain and Language*, 281, 105832. doi:10.1016/j.bandl.2026.105832
– Cao, K., Li, J., Wu, B., Zhang, H. & He, H. (2019). A Lexical Representational Mechanism Underlying Verbal Satiation: An Empirical Study With Rarely Used Chinese Characters. *Frontiers in Psychology*, 10, 2236. doi:10.3389/fpsyg.2019.0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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