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마치·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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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machi & Chinatown

항구가 열렸을 때,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장사를 시작한 한 구역과, 정든 땅을 내어 준 마을 사람들이 옮겨 간 거리.
두 동네 모두 대지진에 무너지고 공습에 불탔으며, 그때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다시 세워 올렸습니다.
문을 지나고, 사당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다리를 건너, 두 동네를 걷습니다.

거류지의 한 구역에서Chinatown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역사난킨마치야마시타초화교

1859년(안세이 6년), 요코하마가 개항합니다. 운조쇼(運上所)의 동쪽 일대는 외국인 거류지로 정해졌고, 서양 상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함께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중국 상인들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장사를 시작한 데서부터, 거리는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처음에는 아침과 저녁에는 반점(飯店), 낮에는 수입 일을 하는 겸업 가게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윽고 수입 장사, 양복 재단, 가구 제작으로 일이 나뉘어 가면서, 반점도 하나의 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구의 역사서는 이것을 ‘오늘날 요리점 거리의 시작’이라고 적고 있습니다(《나카구사》).

1899년(메이지 32년), 거류지의 동네 이름이 폐지되고 이 일대는 ‘야마시타초(山下町)’가 되었습니다. 거리는 오랫동안 ‘난킨마치(南京町)’라 불리며, 일본인도 많이 찾는 요코하마의 명소였습니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발전회는 이 거리를, 개항의 역사와 깊이 얽히면서 화교·화인들이 독자적인 문화와 거리를 일구어 온 곳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거리의 건물은 모조리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관제묘의 기록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고베와 상하이 등지로 피신했다고 전합니다. 1945년 5월 29일의 공습으로 거리는 다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후 야마시타초의 부흥은 이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시작됩니다. 불탄 자리에 판잣집 식당이 늘어섰고, 그곳에는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나카구사》).

지금은 동서남북의 문으로 둘러싸인 약 500미터 사방에 약 630개의 가게가 있습니다. 그중 중국 요리점은 약 200곳입니다(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발전회, 2022년 5월). 이 거리의 식탁이 어떻게 요코하마의 맛이 되어 갔는지는, 산마멘과 시우마이 이야기와 함께 요코하마 음식 이야기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 개의 문Paifang

차이나타운 문패루젠린몬조요몬사신(四神)

차이나타운에는 지금 10기의 패루(牌楼), 곧 문이 서 있습니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발전회는 문이 풍수 사상에 따라 세워졌다고 설명합니다.

동서남북 네 문에는 저마다 수호신이 있습니다. 동쪽 조요몬(朝陽門)은 청룡, 남쪽 스자쿠몬(朱雀門)은 주작, 서쪽 엔페이몬(延平門)은 백호, 북쪽 겐부몬(玄武門)은 현무. 조요몬은 해돋이를 맞는 문으로, 아침 해가 거리를 감싸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문입니다. 엔페이몬에는 평화와 평안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모토마치·주카가이역에서 거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조요몬은 2003년 2월 1일에 완공된, 높이 13.5미터, 폭 12미터로 이 거리에서 가장 큰 문입니다.

큰길 어귀에 선 젠린몬(善隣門)의 초대 문은 1955년 2월, 전후 부흥의 바람을 담아 세워졌습니다. 그때까지 ‘난킨마치’라 불리던 거리는 이 문에 내걸린 이름을 따 ‘중화가(中華街)’, 곧 차이나타운이라 불리게 됩니다. 문은 1989년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친인선린(親仁善隣)’ 네 글자를 내걸며 젠린몬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관제묘가 있는 거리의 동쪽과 서쪽에는 덴초몬(天長門)과 지큐몬(地久門). 엔페이몬보다 더 서쪽, 서녘의 해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세이요몬(西陽門). 그리고 한때 큰길과 나란히 ‘차이나타운의 시장’으로 붐볐던 거리에는 두 개의 이치바도리몬(市場通り門)이 서 있습니다.

불탄 자리에 첫 문이 선 지 70여 년. 문 하나하나에 이 거리 사람들의 바람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탈 때마다 다시 선 관제묘Kuan Ti Miao

요코하마 관제묘관성제군관우관제묘 거리

관제묘에 모셔진 이는 관성제군. 《삼국지》에 이름을 남긴 후한 말의 장수, 관우입니다. 요코하마 관제묘는 그가 충의와 용맹,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징으로서 중국 사람들에게 널리 숭배받아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시작은 1862년, 관성제군의 목상을 모신 뒷골목의 작은 사당이었습니다. 1871년, 간토 지방 화교들의 기부로 본격적인 중국 양식의 사당이 세워집니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사당은 무너졌습니다. 1925년 가을, 두 번째 사당이 중화회관 뒤편에 다시 세워집니다. 1945년 5월 29일의 공습으로 거리와 함께 불타 사라졌습니다. 1947년 초여름, 타다 남은 오래된 목재를 써서 세 번째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1986년 1월 1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사당은 또다시 불탑니다. 하지만 관성제군과 관음보살, 지모낭낭(地母娘娘)의 상은 무사했습니다. 요코하마, 도쿄, 오사카, 고베의 화교 2,000명 이상이 힘을 모아 6억 엔의 모금을 이루어 냅니다. 1990년 8월 14일, 지금의 네 번째 관제묘가 문을 열었습니다(요코하마 관제묘).

무너지고, 불타고, 또다시 불탄다. 그때마다 이 거리 사람들은 사당을 다시 세워 왔습니다. 화려한 지붕을 올려다볼 때, 그 아래 켜켜이 쌓인 160여 년의 시간을 잠시만 떠올려 주세요.

바다의 여신, 마조묘Mazu Miao

요코하마 마조묘마조천후원소절

2006년 3월 17일, 차이나타운에 마조묘가 문을 열었습니다(요코하마 마조묘). 마조는 천후(天后), 천상성모(天上聖母)라고도 불리는 바다의 여신입니다.

사당이 선 곳은 메이지 시대에 청나라 영사관이 있던 자리입니다. 2005년 4월, 공사를 위해 땅을 파자 간토 대지진 이전의 벽돌이 나왔습니다. 약 1,000개의 벽돌은 지금 입구 구조물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요코하마 마조묘는, 이 바다 여신의 아름다움과 영험함과 활기가 차이나타운에 불어넣어지고, 일본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으며, 관광지로서도 즐겁게 찾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고 있습니다. 오래된 벽돌을 토대로 새로운 사당이 선다. 이 거리가 시간을 쌓아 가는 방식을 잘 보여 주는 듯합니다.

Our Suggestion

사당에서는, 무엇보다 기도의 장소로.

관제묘도 마조묘도, 관광 명소이기 전에 이 거리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온 곳입니다. 문을 들어서면 목소리를 조금 낮춰 주세요. 참배하신다면 접수처에서 향을 구하고, 사당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주세요. 두 사당 모두 본전 안에서는 불을 쓸 수 없습니다. 마조묘는 향에 입김을 불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두 손을 모은 사람 앞을 가로지르지 않기. 그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향하지 않기. 사진을 찍을 때는 경내의 안내를 따르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존중은 전해집니다. 그것이 불탈 때마다 사당을 다시 세워 온 사람들에 대한 가장 큰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실행위원회의 제안입니다. 참배 예법과 개방 시간은 각 사당의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차이나타운의 일 년Seasons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춘절차이칭원소절관제 탄신제중추절 월병

이 거리에서는 바다 건너와 같은 달력으로도 계절이 흘러갑니다.

음력 정월을 기념하는 춘절은 해마다 2월 전후.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는 1986년부터 춘절 행사가 열려, 2026년에 40회를 맞았습니다. 사자가 가게들을 돌며 장사 번창과 오곡 풍요를 비는 ‘차이칭(採青)’, 황제의 옷을 차려입은 행렬이 거리를 누비는 ‘축무유행(祝舞遊行)’. 그리고 춘절의 끝에는 마조묘에서 원소절(정월 대보름) 등롱제가 열립니다(2026년은 3월 3일).

여름에는 관제묘에서 관우의 탄생을 기리는 관제 탄신제(해마다 8월 무렵). 가을에는 춘절·단오절과 함께 ‘중화 3대 명절’의 하나인 중추절. 보름달을 즐기고 가을의 결실을 기뻐하며, 가게 앞에는 월병이 늘어섭니다. 가을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사자춤과 용춤이 거리를 누빕니다.

계절 행사는 요코하마의 일 년에서 다른 동네의 마쓰리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옮겨 간 마을의 이름, 모토마치Motomachi

요코하마 모토마치 역사모토마치 쇼핑 스트리트요코하마촌하마토라피닉스 아치

개항 전, 지금의 간나이 일대에는 요코하마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개항장을 만들기 위해 1860년(만엔 원년), 마을의 약 90가구는 이웃한 ‘혼무라(本村)’라 불리던 땅으로 옮겨집니다. 원래의 요코하마촌을 옮겨 왔다고 해서, 이곳은 ‘모토마치(元町)’, 곧 ‘본래의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요코하마시 나카구, 요코하마 모토마치 쇼핑 스트리트).

‘요코하마’라는 이름은 항구의, 그리고 이윽고 큰 도시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정든 땅을 내어 준 마을 사람들의 기억은 ‘모토(元)’라는 한 글자에 남아 있습니다.

막부 말기, 야마테 언덕에 외국인의 주거지가 들어서자, 모토마치 거리는 언덕 위의 집과 간나이의 상관(商館)을 잇는, 외국인들의 일상의 길이 되었습니다. 다이쇼 초기에는 꽃집, 양복점, 여성 모자점, 서양 가구점, 빵집, 카페가 늘어선, 이국의 향기가 나는 상점가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888년(메이지 21년)에 모토마치에서 태어나 ‘식빵의 발상지’라고도 불리는 빵집은 지금도 이 거리에 있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요코하마 음식 이야기).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거리는 괴멸했습니다. 1945년 5월의 공습으로 다시 불탄 벌판이 됩니다. 1947년 4월, 상점 주인들은 ‘모토마치 SS회’를 만들었고, 거리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1955년에는 건물 벽을 길에서 뒤로 물리도록 지정을 받아, 가게들이 조금씩 처마를 뒤로 물려 걷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갑니다. 1967년 유럽 6개국의 상점가와 자매 협약을 맺었고, 1985년 도로 정비가 끝났을 때 거리의 상징으로 세운 문은 ‘피닉스 아치’. 불타고는 다시 일어서 온 거리가 고른 것은 불사조의 이름이었습니다.

야마테의 여학교 학생들이 예전부터 입던 차림을 여성지가 ‘요코하마 트래디셔널’, 줄여서 ‘하마토라’라 이름 붙여 소개했고, 그 유행이 모토마치의 이름을 단숨에 일본 전국에 알렸습니다(요코하마 모토마치 쇼핑 스트리트). 가나가와현 관광협회는 하마토라를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유행한 스타일로, 모토마치를 그 발상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길이 약 600미터의 거리에서는 해마다 2월과 9월에 ‘차밍 세일’이 열립니다(가나가와현 관광협회).

Our View

우리의 시선: ‘모토(元)’라는 한 글자

항구가 열려 세계와 이어진다. 그 시작의 날에, 자기 집을 내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토마치라는 이름은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지금도 말없이 들려주고 있습니다.

옮겨 간 마을 사람들의 거리는 이윽고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들의 생활을 떠받치는 거리가 되었고, 대지진과 공습 뒤에는 자신들의 손으로 불사조의 문을 세웠습니다. 받아들이고, 떠받치고, 다시 세운다. 이 거리의 시간은 ‘사흘만 살면 하마코(ハマっ子, 요코하마 토박이)’라는 말로 알려진 요코하마의 기풍보다 훨씬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칸은 Yokohama Open 실행위원회의 생각입니다. 동네 이름의 유래는 요코하마시 나카구 ‘나카구의 동네 이름과 그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모토마치에서 차이나타운으로A Walk

모토마치 차이나타운 산책이시카와초역모토마치·주카가이역요코하마 산책

Our Suggestion

마을의 길에서, 문의 거리로. 다리 하나 건널 뿐인, 160년.

JR 이시카와초역 모토마치 출구에서 모토마치 거리로. 서두르지 말고, 건물을 뒤로 물려 생겨난 넓은 보도를 쇼윈도를 바라보며 걸어 보세요. 야마테 언덕의 집과 간나이의 상관을 날마다 오가던 사람들도 이 길을 걸었습니다.

거리에 선 피닉스 아치를 올려다보았다면, 호리카와강을 건너 차이나타운으로. 문을 지나 관제묘 거리에서는 덴초몬과 지큐몬 사이를 빠져나가, 사당 앞에서 잠시 멈춰 섭니다. 마조묘에서는 입구의 오래된 벽돌에 눈길을 주어 보세요.

저녁 무렵,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큰길을 젠린몬까지 걷고, 조요몬을 지나 모토마치·주카가이역으로. 먹거리 산책은 조금씩. 마지막으로 다리 위에서, 건너온 두 동네를 돌아보세요.

※걷는 방법은 실행위원회의 제안입니다. 모토마치는 모토마치·주카가이역(모토마치 출구)에서 도보 1분, 이시카와초역(모토마치 출구)에서 도보 3분. 차이나타운은 모토마치·주카가이역에서 도보 1분, 이시카와초역에서 도보 5분. 마조묘는 모토마치·주카가이역 3번 출구에서 도보 3분입니다(각 공식 안내 기준). 야마테 언덕이나 야마시타 공원까지 발길을 넓히는 코스는 요코하마를 걷는 법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무대를 걷다On Location

아부나이 데카 촬영지돌아온 아부나이 데카차이나타운 촬영지모토마치 촬영지

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사이트는 역대 《아부나이 데카(あぶない刑事)》 극장판의 촬영지로 차이나타운의 거리와 모토마치의 한 모퉁이를 꼽고 있습니다. 2024년 영화 《돌아온 아부나이 데카》 때는 요코하마시가 촬영지 지도를 만들었고, 요코하마 차이나타운과 요코하마 모토마치 쇼핑 스트리트도 협업에 참여했습니다.

큐를 잡다Play

차이나타운에서 간나이역까지는 도보 7분. 간나이·이세자키초에 당구장이 모여 있습니다. 간나이·이세자키초 페이지로 →

먹다Eat

거리의 역사와 함께해 온 가게 (게재료는 받지 않습니다)

무테키로(霧笛楼)

1981년 모토마치에 ‘프랑스 요리 료테이(仏蘭西料亭)’로 태어난 가게. 항구 도시의 서양과 일본 문화를 비추는 요리입니다.

공식 사이트

차이나타운 요리의 역사는 요코하마 음식 이야기에서, 도리아와 나폴리탄이 태어난 호텔 뉴그랜드는 야마시타초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머물다Stay

요코하마시 관광협회 공식 사이트에서는 지역을 좁혀 숙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차이나타운 바로 곁, 야마시타 공원 앞에는 1927년에 개업한 호텔 뉴그랜드가 있습니다(야마시타초 페이지).

이웃한 지역Nearby

출처 (확인일: 2026년 10월 6일)

수치는 출처 시점의 것입니다. 소요 시간·영업시간·개방 시간·행사 일정 등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방문하기 전에 각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