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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무엇에, 라고는 잘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정해진 레일 위를 계속 걷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펑크 록은, 그 윤곽에 이름을 붙여 준 음악이었습니다.
반역의, 대상이 바뀐다
섹스 피스톨즈가 끝난 뒤, 존 라이든은 다음 음악으로 향했습니다.
펑크라는 ‘틀’ 그 자체를, 부수러 나섰다.
나이를 먹으면, 분노가 향하는 곳이 바뀌어 간다.
사회도, 누군가도 아닌——타성에, 어제와 같은 나에게, 나의 한계에.
무언가에 계속 반항하는 것보다, 내가 나답게 계속 존재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젊을 때는 몰랐던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 간다.
어느 밤의 일
문을 열면,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다.
잘 치는 사람도, 못 치는 사람도, 자기 공만 보고 있다.
저마다의 테이블에, 저마다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혼자여도 좋은 밤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테이블 앞에 서고 싶은 밤도 있다.
그 무관심이, 묘하게 편안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그저, 자기 공과 마주하면 된다.
감정만으로는, 공이 들어가지 않는다
테이블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같은 배치에서, 어제는 들어갔다.
오늘은 빗나갔다.
왜일까.
어디가 달랐을까.
자세일까, 힘 조절일까, 아니면 나의 호흡일까——.
감정을 끌고 들어와도, 공은 정직하게 구를 뿐입니다.
나의 버릇을, 인정해야 한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치는 한, 어제와 같은 결과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반골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된다.
테이블만이, 알고 있다.
나답게, 라는 이야기
진짜 불량배는, 아마, 당구 같은 건 치지 않는다.
큐를 쥐는 사람들은——반항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여기에 오면, 나로 돌아올 수 있다.
혼자 묵묵히 공과 마주하는 밤도.
좋아하는 사람과 웃으며 치는 밤도.
어느 쪽이든, 같은 테이블 위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분노는, 입구였습니다.
무언가를 거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있기 위해서.
반골이 향하는 곳은, 의외로 이런 조용한 장소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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