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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마치고, 세면대 맨 앞.
늘 쓰던 세럼을, 늘 쓰던 양만큼 손에 덜어 낸다.
볼에 닿는 순간, 따끔, 하고 살짝 쓰라렸다.
기분 탓인가 싶어, 한 번 더 펴 바른다.
역시, 쓰라리다.
병을 뒤집어, 개봉한 날짜를 본다.
아직 두 달 조금 넘었다.
색도, 냄새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어디서, 잘못된 걸까.
두 달, 같은 한 병
세럼을 한 병으로 줄인 지, 두 달이 지나 있었다.
하나만.
같은 시간에.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닿는 곳에.
그것만을 지켜 왔다.
야근으로 늦어진 밤에도.
회식으로 막차 즈음에 돌아온 밤에도.
화장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밤에도, 이 한 병만큼은 손에 들었다.
거울 앞에서, 손바닥에 몇 방울.
두 손으로 감싸듯, 볼에 지그시 댄다.
십 초쯤의, 짧은 의식.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만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세면대 앞에 설 때마다, 살짝 등이 펴진다.
이어지고 있다.
그 사실 자체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 세럼이, 오늘 밤은 쓰라리다.
배신당했다, 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열고, ‘민감성 피부 세럼’이라고 치기 시작한다.
새것을 사면, 해결될까.
손가락이 멈춘다.
전에도, 이렇게 하나씩 늘려 갔었다.
선반 안쪽에 늘어선, 쓰다 만 세 병.
그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공기가, 먼저 가을이 된다
자기 전에, 창문을 조금 열었다.
지난주까지, 밤공기는 무거웠다.
피부에 휘감기는 듯한, 눅눅한 무게.
오늘 밤 공기는, 가볍다.
들어오는 바람이, 보송하다.
그러고 보니, 방 안에 널어 둔 빨래가, 오늘 아침엔 벌써 말라 있었다.
입술 끝이, 조금 당긴다.
머리카락도, 여름만큼 부스스하지 않다.
모르는 사이에, 공기 쪽이 바뀌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조금 찾아본다.
공기가 건조하고 차가워지면, 피부는 자극에 반응하기 쉬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피부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도, 몇몇 연구에서 보고되어 있다.
다만, 모든 연구가 같은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피부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이어 온 손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손이 아니라, 그 손이 닿아 있는 공기 쪽이었다.
습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습도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온이라면, 피부로 느낀다.
햇살이라면, 눈으로 안다.
하지만 습도는, 늘 무언가가 지나간 뒤에야 알아챈다.
빨래가 마르는 속도.
문을 닫을 때의, 소리의 가벼움.
종이를 넘기는 손끝의, 희미한 걸림.
겨울 아침, 니트를 벗는 순간의, 타닥 하는 작은 아픔.
어느 것도, 공기 그 자체는 아니다.
공기가 지나간 뒤에 남는, 흔적 같은 것이다.
이 도시의 여름에는, 바다 냄새가 난다.
오산바시 근처를 걸으면, 바닷물을 머금은 바람이, 셔츠 등에 달라붙는다.
그 무거운 바람이, 어느새, 어딘가로 가 버렸다.
언제 가 버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기예보도, 알려 주지 않는다.
달력으로는, 이미 추분이 지났다.
하지만, 몸은 달력으로 계절을 알지 못한다.
공기가 먼저 바뀌고, 그 뒤를 쫓듯, 피부가 알아챈다.
알아챘을 때, 계절은 이미 반걸음 앞에 있다.
아마 해마다,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도, 분명 무언가가 쓰라렸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계절 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혼자서, 문을 열었다
다음 날 퇴근길, 간나이에서 전철을 내렸다.
평소에는, 동료와 함께.
혼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개찰구를 나와서, 몇 번이나 되돌아갈 뻔한다.
혼자 테이블을 빌려, 혼자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유는, 딱히 없다.
집에 돌아가도, 아마 스마트폰만 볼 것이다.
그럴 바엔, 잠깐만 들렀다 가자.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운동하러 온 것도 아니다.
뷰티를 위해서도 아니다.
계단을 오른다.
발소리가, 메마르게 울린다.
문 앞에서, 한 번만 숨을 내쉰다.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볼에 닿았다.
테이블 위만을, 조명이 네모나게 비추고 있다.
라사의 초록.
어느 테이블에선가, 톡, 하고 공이 떨어지는 소리.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다.
혼자 온 사람이, 혼자 치고 있다.
그것이, 여기서는 당연한 일인 모양이다.
카운터에서 테이블을 빌리고, 큐를 고른다.
테이블 주위를 걷는다.
초크를 바른다.
노릴 공을 정한다.
수구가 멈출 자리를, 떠올린다.
자세를 잡고, 숨을 고른다.
늘 하던 대로, 큐를 내민다.
오늘은, 공이 잘 나간다
노린 공은, 들어갔다.
하지만 수구가, 생각보다 더 굴러간다.
멈춰 주길 바랐던 자리를 지나쳐, 쿠션에 맞고, 다시 되돌아온다.
한 번 더, 똑같이 친다.
또, 너무 굴러간다.
힘 조절은, 지난주와 같은 셈이었다.
순서도, 같다.
자세도, 아마 같다.
그런데도, 결과만 달랐다.
“오늘은, 공이 잘 나가네”
옆 테이블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루틴 이야기를 해 주었던 그 단골이었다.
“잘 나간다, 고요?”
“라사 상태라든가, 이것저것 바뀌니까. 오늘은, 잘 나가네”
“제가 치는 게, 이상해진 줄 알았어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처음 몇 개는, 테이블한테 물어보는 거야. 오늘은 얼마나 구르냐고”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보고 있으니, 처음 몇 개를, 힘을 빼고, 천천히 치고 있다.
공이 멈추는 자리를, 가만히 눈으로 좇고 있다.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묻기 위한 한 개.
따라 해 보았다.
평소보다, 조금 짧게.
조금, 부드럽게.
수구가, 천천히 굴러, 멈춘다.
생각한 자리의, 반걸음 앞.
갑자기, 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테이블 쪽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한 시간만 치고, 큐를 돌려준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간다.
밤의 간나이 공기는, 역시 가볍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볼에 바람이 닿는다.
늘 다니던 길이, 이상하게 걷기 힘든 날이 있다.
늘 하던 대화가, 잘 맞물리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어딘가가 나빠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뀐다.
같은 세럼 이야기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한다.
세면대 맨 앞에, 늘 쓰던 세럼.
새것은, 결국 사지 않았다.
검색하다 만 스마트폰 화면을, 살며시 닫는다.
선반 안쪽에는, 이제 쓰다 만 병이 없다.
있는 것은, 이 한 병뿐.
두 달 전의 내가, 여기 놓아 준 한 병.
손에 들기 전에, 창밖을 잠깐 본다.
오늘 밤 공기도, 가볍다.
맞은편 아파트 창에, 띄엄띄엄 불이 켜져 있다.
평소보다 조금 적게 덜어, 손바닥에서 살짝 데운다.
문지르지 않고, 살며시 눌러 준다.
볼에 닿는다.
따끔, 하고, 역시 조금 쓰라렸다.
어제와 같은 세럼.
어제와 같은 순서.
그래도, 어제와는 다른 밤.
바꾼 것은, 아주 조금의 양과, 손가락의 힘뿐.
세럼은, 바꾸지 않았다.
다만, 같은 것을, 같은 식으로는 다루지 않게 되었다.
병을, 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는다.
내일이 되면, 또 공기가 바뀔지도 모른다.
테이블도, 또 다른 얼굴을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물어보면 된다.
오늘은, 얼마나 구를까.
오늘 밤은, 얼마나 쓰라릴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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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Engebretsen, K. A., Johansen, J. D., Kezic, S., Linneberg, A. & Thyssen, J. P. (2016). The effect of environmental humidity and temperature on skin barrier function and dermatitis. Journal of the European Academy of Dermatology and Venereology, 30(2), 223-249. doi:10.1111/jdv.13301
- Dolečková, I., Čápová, A., Machková, L., Moravčíková, S., Marešová, M. & Velebný, V. (2021). Seasonal variations in the skin parameters of Caucasian women from Central Europe. Skin Research and Technology, 27(3), 358-369. doi:10.1111/srt.12951
- Jiang, W., Wang, J., Zhang, H., Xu, Y., Jiang, C., Yang, J., Liu, W. & Tan, Y. (2022). Seasonal changes in the physiological features of healthy and sensitive skin. Journal of Cosmetic Dermatology, 21(6), 2581-2589. doi:10.1111/jocd.144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