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부키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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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obuki-cho

복을 빌어 ‘고토부키(寿)’라 이름 붙인, 늪을 메운 자리의 동네.
전후, 항구에서 짐을 지고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이곳에서 잠들고, 이곳에서 아침 일터로 나섰습니다.
언덕 위의 야마테와 같은 나카구에 이 동네가 있습니다. 빛이 드는 곳과 그늘이 지는 곳. 성공도 좌절도, 한 구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고토부키초라는 이름Kotobuki-cho, Yokohama

에도 시대에 요시다 간베에가 바닷물이 들어오던 만을 메워 일군 요시다 신덴(吉田新田)에도, 습지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 늪이 메워진 것은 약 200년 뒤인 1873년(메이지 6년). 새 땅에는 마쓰카게(松影, 소나무 그늘), 고토부키(寿, 장수와 경사), 오기(扇, 부채), 오키나(翁, 덕 높은 노인), 후로(不老, 늙지 않음), 반다이(万代, 영원한 세월), 호라이(蓬莱, 신선이 사는 봉래산)라는 일곱 개의 상서로운 이름이 붙었고, ‘우메치 나나카초(埋地七ヶ町)’, 곧 매립지의 일곱 동네라 불립니다. 고토부키초는 그중 하나입니다.

운하에 둘러싸이고 항구에 가까운 이 일대에는 목재상과, 수출용 섬유 제품·도자기를 만드는 공장, 도매상이 모여들었습니다. 1923년(다이쇼 12년) 간토 대지진으로 고토부키초는 모두 불탔지만, 다시 일어서 1931년(쇼와 6년)에는 중앙도매시장의 분장(分場)이 들어설 만큼의 물류 동네가 됩니다. 그리고 1945년(쇼와 20년)의 요코하마 대공습. 몇몇 건물만 남기고 잿더미가 되었고, 전후에는 항만 시설과 함께 미군에 접수되었습니다.

항구를 떠받친 사람들의 동네: 고토부키초와 간이숙박소 거리의 역사History

“요코하마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전후의 항구

전후의 요코하마항은 군의 화물과 수입 곡물이 드나드는 창구였습니다. 짐을 나를 일손은 아무리 있어도 모자랐습니다. “요코하마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퍼졌고, 사쿠라기초와 노게에는 일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묵을 곳이 모자라, 쓰지 않게 된 거룻배를 고친 ‘수상 호텔’이라 불린 숙소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항구의 하역 일은 더욱 늘어 갔습니다.

인력시장과 간이숙박소1950~60년대

1950년대 중반, 고토부키초의 접수가 풀립니다. 노게에 있던 요코하마 공공직업안정소가 고토부키초로 옮겨 왔고, 일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 동네로 향했습니다. 항구에 가깝고, 땅값이 쌌습니다.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이숙박소가 잇달아 들어서, 1965년(쇼와 40년) 무렵에는 80곳 남짓. 지금의 동네 모습은 이 무렵 거의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1968년(쇼와 43년), 간이숙박소에 사는 사람은 가족을 포함해 7,500명을 넘었습니다. 그중 미성년자가 약 1,000명. 묵는 이들의 대부분은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창때에는 8,000명이 넘는 노동자들로 동네가 북적였습니다. 고토부키초는 지금도 오사카의 아이린 지구, 도쿄의 산야와 함께 ‘일본 3대 요세바(寄せ場)’, 곧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일감을 구하던 인력시장의 하나로 꼽힙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묵는 간이숙박소 거리를 가리키는 ‘도야가이(ドヤ街)’라는 이름도, 이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입니다.

항구의 짐을 지던 손, 건물과 길을 만든 손. 전후의 요코하마와 고도성장기의 일본은, 그 손 위에 세워져 갔습니다.

“고토부키초의 새벽”동네 사람들의 손으로

1965년(쇼와 40년), 요코하마시는 고토부키 생활관을 두고 생활과 건강 상담, 아이들의 보충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969년(쇼와 44년) 3월에는 주민들이 만든 ‘고토부키 지구 자치회’가 생겨납니다. 신문은 이를 “고토부키초의 새벽”이라 전했습니다. 어린이 공원, 밤의 생활 상담과 진료소, 여성 교실, 어린이회, 야구부. 동네 안에 문을 연 야간 은행에는 1,000개가 넘는 계좌가 생겼다고 구의 역사는 적고 있습니다.

1974년(쇼와 49년) 9월, 고토부키초 종합노동복지회관이 완공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나누던 ‘노천 인력시장’을 없애고, 사람들의 생활과 복지를 떠받치기 위한 건물입니다. 직업안정소, 진료소, 도서실, 목욕탕, 그리고 시영 주택. 이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로서, 40여 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고토부키초Kotobuki Today

시대가 바뀌는 가운데, 동네도 달라져 왔습니다. 헤이세이 시대에 들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지금은 65세 이상인 분들이 절반을 넘습니다(2024년, 53.4%). 한때 일용직 노동자의 동네였던 이곳은,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사시고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고토부키초를 포함한 약 0.06km²에 간이숙박소 109곳. 2024년 11월 기준으로 5,261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혼자 지내는 분들입니다.

2019년(레이와 원년) 6월, 새로 지은 회관은 ‘요코하마시 고토부키초 건강복지교류센터’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진료소와 도서 코너, 주민 활동을 위한 방, 야외 광장. 2층의 대중목욕탕 ‘오키나유(翁湯)’는 옛 회관 시절부터 이어 온 동네의 목욕탕입니다. 벽에는 도카이도 53차(東海道五十三次)의 그림이 타일에 구워져 있습니다.

나카구가 이 지구를 위해 세운 계획에는, 바라는 동네의 모습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토부키에 산다고, 고토부키에서 자랐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동네.” 해마다 한 번, 동네 사람들의 모임 ‘유메 회의(꿈 회의)’는 이 동네에서 살았던 이들과의 인연이 끊기지 않도록, 구보야마의 묘지로 참배를 갑니다.

여행자를 맞는 숙소Travelers

2000년대에는 간이숙박소의 빈방을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살리는 시도도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그런 게스트하우스에 해외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든다고 가나가와 신문이 전했습니다. 차이나타운에도, 야마시타 공원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항구의 노동을 떠받친 숙소는, 세계에서 오는 여행자들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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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quest from the Committee

고토부키초에 묵으시는 분들께: 실행위원회의 부탁

이 동네의 간이숙박소는 여행자의 숙소이기 전에,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분들의 집입니다. 복도 너머 문 안쪽에는, 수십 년의 삶이 있습니다.

동네 분들과 숙소 입구, 방 안을 향해 카메라를 들지 말아 주세요. 밤에는 목소리와 발소리를 낮춰 주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분도, 몸을 쉬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묵기 전에, 조금만 이 동네가 걸어온 길을 알아 주세요. 잿더미가 된 항구를 다시 일으키고, 건물을 세우고, 길을 낸 사람들이 이곳에서 잠들고, 이곳에서 일하러 나갔습니다. 지금 일본의 풍요는 그 위에 있습니다.

이 동네에 경의를 품고 머무는 것. 그것은 요코하마에, 그리고 일본에 경의를 표하는 것과 같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실행위원회의 부탁입니다. 숙소는 공식 사이트나 예약 사이트에서 여행자를 받는다고 안내하고 있는 곳을 골라 주세요. 센터의 대중목욕탕 ‘오키나유’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영업일과 요금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교통Access

JR 이시카와초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간나이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보면, JR 네기시선 건너편에 있습니다.

큐를 잡다Play

밤에는 간나이·이세자키초로. 간나이역 주변에 당구장이 모여 있습니다.간나이·이세자키초 페이지로 →

머물다Stay

요코하마시 관광협회 공식 사이트에서는 지역을 좁혀 숙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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