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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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ashitacho

개항으로부터 40년, 외국 사람들이 살며 장사를 하던 거류지의 동네.
대지진으로 무너진 거리의 잔해는 바다를 메워, 항구를 마주한 공원이 되었습니다.
그 앞에 떠 있는 배 한 척과, 쇼와 초기부터 항구를 바라보아 온 호텔.
바닷바람을 맞으며, 켜켜이 쌓인 시간 위를 걷는 동네입니다.

거류지였던 동네The Foreign Settlement

야마시타초 유래외국인 거류지야마시타 거류지에이이치반칸(英一番館)

1859년(안세이 6년), 요코하마항이 열렸습니다. 요코하마촌의 거의 한가운데, 지금의 가나가와현청 자리에 운조쇼(運上所)가 설치되고, 그 동쪽이 외국인 거류지로 정해집니다(《나카구 역사 연표》). 지금의 야마시타초가 바로 이 거류지입니다. 1866년(게이오 2년) 3월에는 오타야 신덴(太田屋新田)의 늪지를 메워 거류지를 넓혔습니다(요코하마시 나카구).

같은 해 10월, 간나이를 태운 ‘부타야 화재’는 거류지의 대부분에까지 번졌습니다. 큰불 뒤에 동네를 다시 일군 이야기는 바샤미치·니혼오도리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879년(메이지 12년) 1월, 거류지 안에 가가초, 사쓰마초, 에치고초, 가이간도리, 혼초도리 등 30개의 동네 이름이 붙었습니다(요코하마시 나카구). 지금의 야마시타초 1번지, 실크 센터가 서 있는 자리에는 영국 상사 자딘 매서슨 상회(Jardine Matheson)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에이이치반칸(英一番館, 영국 1번관)’이라 불렀다고 합니다(실크 박물관).

배가 일본과 외국을 오가는 단 하나의 길이던 시절, 요코하마항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발을 딛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을 맞는 숙소로 야마시타초 일대에는 많은 호텔이 처마를 잇대고 있었다고, 호텔 뉴그랜드는 스스로의 역사에 적고 있습니다.

1899년(메이지 32년), 조약 개정으로 거류지 제도는 막을 내립니다(요코하마시 항만국·요코하마시 중앙도서관). 그해 7월 24일, 거류지의 동네 이름은 모두 폐지되고, 일대는 ‘야마시타초’라는 하나의 동네가 되었습니다(요코하마시 나카구). 개항으로부터 꼭 40년. 외국 사람들이 살아온 동네에 일본의 동네 이름이 붙은 날이었습니다.

차이나타운도 야마시타초Chinatown

개항 무렵, 서양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중국 상인들도 이 거류지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지금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도 주소로 보면 야마시타초 안에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문과 사당, 그리고 이 거리를 일구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토마치·차이나타운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잔해 위의 바닷가: 야마시타 공원Yamashita Park

야마시타 공원간토 대지진등록기념물인도 수탑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상

1923년(다이쇼 12년) 9월 1일의 간토 대지진은 야마시타초의 호텔 거리를, 요코하마의 시가지와 함께 잔해의 거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피해 지역에는 외국인 손님을 위한 임시 숙소가 세워졌지만, 그것은 ‘텐트 호텔’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호텔 뉴그랜드).

대지진으로 생긴 막대한 잔해를 버릴 곳으로, 야마시타초 가이간도리 앞의 바다가 지정되었습니다. 정부 기관인 부흥국(復興局)이 직접 맡아 1925년(다이쇼 14년)에 호안 공사가 시작되었고, 1930년(쇼와 5년)에 공원이 문을 엽니다. 문화청은 야마시타 공원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임해 도시공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개원 당시의 정문은 호텔 뉴그랜드를 바라보는 공원 남쪽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네 곳의 문기둥과, 정문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울타리가 개원 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바다를 향해 타원형으로 돌출된 석축 발코니와 물가로 내려가는 돌계단도, 가운데와 서쪽 두 곳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문화청).

공원 서쪽 끝에는 이슬람풍 디자인의 음수대가 있습니다. 1939년(쇼와 14년), 대지진 때 받은 은혜에 대한 답례로 요코하마 인도 상인 조합(横浜印度商組合)이 기증한 것으로, ‘인도 수탑’이라 불리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문화청). 바닷가에는 동요로 친숙한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상’도 앉아 있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야마시타 공원은 2007년 국가 등록기념물이 되었습니다(문화청).

Our View

우리의 시선: 잔디 아래의 거류지

야마시타 공원의 벤치에 앉으면, 눈앞에는 항구가, 등 뒤에는 가로수 길이 있습니다.

이 잔디 아래에는 대지진으로 무너진 거리의 잔해가 잠들어 있습니다. 벽돌로 지은 상관, 호텔, 사람들이 살던 집. 개항부터 60여 년 동안 이 동네에 쌓아 올린 것들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바다를 메우는 흙이 되었습니다.

거리가 잃은 것들 위에 지금의 바닷가 풍경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항구를 건너는 바람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요코하마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을 버리지 않고 바닷가의 공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선택에 우리는 경의를 품고 있습니다.

※이 칸은 Yokohama Open 실행위원회의 생각입니다. 공원의 내력은 문화청 ‘문화유산 온라인’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대지진 뒤에 태어난 호텔Hotel New Grand

호텔 뉴그랜드클래식 호텔와타나베 진오사라기 지로

대지진 뒤, 요코하마시를 비롯해 당시의 정재계가 힘을 모아 새 호텔을 짓자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1927년(쇼와 2년) 12월 1일, 잔해로 메운 야마시타 공원을 정면에 두고 호텔 뉴그랜드가 문을 열었습니다. 본관은 건축가 와타나베 진의 설계로, 요코하마시 역사적 건조물로 인정받았습니다(호텔 뉴그랜드).

파리에서 초빙된 초대 총주방장 사리 와일은 정통 프랑스 요리와 함께, 격식에 얽매여 있던 호텔 레스토랑에 자유로운 공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스위스 파파’라 불렀다고 합니다. 작가 오사라기 지로는 쇼와 6년부터 약 10년 동안, 항구가 정면으로 보이는 318호실을 작업 공간으로 삼았습니다(호텔 뉴그랜드).

이 호텔에서 태어난 요리와, 종전의 해에 이 호텔에 도착한 사람의 이야기는 요코하마 음식 이야기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떠 있는 배: 히카와마루Hikawa Maru

히카와마루닛폰유센 히카와마루중요문화재시애틀 항로

야마시타 공원 앞에 배 한 척이 떠 있습니다. 히카와마루. 1930년(쇼와 5년) 요코하마 선거(船渠)에서 완성된, 닛폰유센(日本郵船)의 시애틀 항로를 위한 화객선입니다. 지금의 미나토미라이에 있던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배의 이야기는 사쿠라기초·미나토미라이 페이지에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요한 수출품이던 비단을 안전하게 나르기 위해, 배에는 안쪽에 나무판을 댄 ‘실크 룸’이라는 전용 창고가 마련되었습니다. 일등 사교실과 식당의 실내 장식은 프랑스 설계자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문화청은 이를 아르데코 양식이 일본에 직접 들어온 최초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문화청). 희극왕 채플린도 탔던 배로 알려져 있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전쟁의 시대, 히카와마루는 해군의 병원선이 되었습니다. 종전까지 세 차례 기뢰에 부딪히고도 가라앉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복원선(復員船)이 되었고, 해외에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귀환선(引揚船)이 되기도 했습니다(문화청·닛폰유센).

1953년, 히카와마루는 시애틀 항로로 돌아옵니다. 선령 30년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태평양을 건넌 것이 254회, 실어 나른 승객은 2만 5천여 명. 1960년에 은퇴하고, 이듬해인 1961년부터 야마시타 공원 앞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2008년 ‘닛폰유센 히카와마루’로 새롭게 공개되었고, 2016년에는 전쟁 전 일본에서 건조되어 현존하는 유일한 화객선으로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닛폰유센·문화청).

  • 닛폰유센 히카와마루: 개관 10:00~17:00(입관은 16:30까지). 월요일 휴관(공휴일이면 개관하고 다음 평일 휴관). 미나토미라이선 모토마치·주카가이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지금은 선체 조사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임시 휴관하는 날이 있습니다. 방문하기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비단의 항구Silk

실크 박물관실크 센터생사 무역에이이치반칸 터

개항 뒤 요코하마는 생사의 큰 수출항으로 번영했습니다. 히카와마루의 실크 룸도 그 시대가 남긴 흔적입니다.

에이이치반칸이 있던 자리에 1959년(쇼와 34년), 실크 센터 국제무역관광회관이 세워지고, 그 안에 실크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이었습니다. 이 구상에는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에게 일본의 비단을 알리고 생사 수출을 늘리고 싶다는, 전후 부흥을 향한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실크 박물관).

1969년, 바다 쪽 입구에 ‘기누오토메(絹乙女, 비단 아가씨)’ 상이 놓였고, 같은 자리에 요코하마가 개항할 무렵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뽕나무가 지금의 사가미하라시로부터 기증되어 심어졌습니다(실크 박물관). 박물관 1층에서는 살아 있는 누에를 보거나, 고치에서 실을 뽑아 볼 수 있습니다.

  • 실크 박물관: 야마시타초 1번지, 실크 센터 2층. 월요일 휴관(공휴일이면 다음 날). 미나토미라이선 니혼오도리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항구를 지키는 불빛과, 바다로 뻗은 부두Marine Tower & Osanbashi

요코하마 마린타워등대오산바시메리켄 하토바

1961년(쇼와 36년), 요코하마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요코하마 마린타워가 세워졌습니다. 높이 106미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대로서 오랫동안 항구를 지켜보았습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등대의 역할을 마친 것은 2008년 9월 1일. 2019년부터 휴관했다가 2022년 9월에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요코하마시). 2026년, 탑은 개업 65주년을 맞았습니다(요코하마 마린타워).

야마시타 공원 서쪽 끝 너머에서 바다로 곧게 뻗어 나간 것이 오산바시입니다. 1894년(메이지 27년), 요코하마항 최초의 축항 공사로 길이 약 457미터의 철제 잔교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메리켄 하토바(メリケン波止場)’라 부릅니다. 간토 대지진 때 잔교는 내려앉았고, 부두의 건물은 불탔습니다(오산바시).

종전의 해, 오산바시는 진주군에 접수되어 ‘사우스 피어’라 불립니다. 반환된 것은 1952년.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국제 여객선 터미널이 생겼고, 지금의 터미널은 660건의 응모가 모인 국제 디자인 공모를 거쳐 2002년에 완성되었습니다(오산바시). 옥상은 항구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광장입니다.

인형의 집과, 쉬고 있는 홀Doll Museum & Kenmin Hall

야마시타 공원 동쪽 끝에 요코하마 인형의 집이 있습니다. 2026년 6월, 개관 4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소장품의 바탕이 된 것은 오노(大野英子)라는 한 여성의 인형들입니다. 진주왕 미키모토 고키치의 비서 겸 통역으로 일한 뒤 독립해, 모토마치에서 진주 가게를 운영하며 ‘하마(요코하마)의 진주 여왕’이라 불린 사람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여행자를 자택에 초대하는 등 민간 외교에도 힘을 쏟았고, 인형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요코하마에 인형을 공개하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바라게 됩니다. 살아생전에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뜻은 요코하마시에 대한 기증으로 이어져 인형의 집이 문을 여는 힘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증된 인형은 76개 나라와 지역, 1,981점에 이릅니다(요코하마 인형의 집).

야마시타코엔도리를 마주하고 가나가와 현민홀이 있습니다. 1975년 1월 17일에 개관해, 유럽 오페라 극장이 무대와 단원을 통째로 옮겨 온 공연부터 팝 콘서트, 현민들의 발표 무대까지, 50년에 걸쳐 무대에 불을 밝혀 왔습니다. 2025년 3월 31일, 건물 노후화로 휴관했고, 지금은 재정비가 검토되고 있습니다(가나가와 현민홀). 홀의 무대는 지금, 현 안 곳곳으로 찾아가 공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접수의 시대After the War

전쟁이 끝나자, 요코하마 시가지의 중심부는 연합군에 접수되었습니다. 그 넓이는 나카구 면적의 74%에 이릅니다(《나카구 역사 연표》).

1945년 8월 30일,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아쓰기에서 곧장 호텔 뉴그랜드로 들어와, 항구를 마주한 315호실에 머물렀습니다(호텔 뉴그랜드). 야마시타 공원은 전쟁 중에는 일본 해군이 사용했고, 전후에는 진주군의 주택 용지가 되었습니다. 접수가 해제된 것은 1954년(쇼와 29년). 공원 전체가 시민에게 개방된 것은 1960년(쇼와 35년)의 일입니다(문화청). 지금의 침상 화단(沈床花壇)은 그 무렵, 개원 당시의 보트 계류장을 고쳐 만든 것입니다(문화청).

대지진과 전쟁. 두 차례에 걸쳐 내주었던 바닷가를 이 동네가 시민의 공원으로 되찾기까지, 개원으로부터 3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품의 무대를 걷다On Location

야마시타 공원 촬영지위험한 형사 촬영지히카와마루호텔 뉴그랜드

요코하마시는 야마시타 공원을 다양한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단골 촬영지’로 소개합니다. 요코하마시 관광정보 사이트의 《위험한 형사(あぶない刑事)》 촬영지 순례에서는 야마시타바시, 닛폰유센 히카와마루, 호텔 뉴그랜드 등이 꼽힙니다.

Our Suggestion

아침의 야마시타 공원에서 히카와마루, 그리고 오산바시로.

사람이 적은 아침에, 마린타워 발치에서 야마시타 공원으로 들어가 보세요. 개원 때의 문기둥과 돌 발코니를 곁에 두고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이윽고 히카와마루의 선체가 가까워집니다.

개관 시각이 되면 배에 올라 봅니다. 비단을 나르던 선창과 아르데코의 사교실, 그리고 갑판에서 바라보는 항구. 배에서 내리면 공원 서쪽 끝에서 인도 수탑 앞을 지나 오산바시로. 옥상 광장에 서면 방금 걸어온 바닷가와 마린타워, 그 너머의 언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잔해 위의 공원과, 전쟁을 지나온 배와, 항구의 입구. 한 시간 남짓한 산책으로, 이 동네의 백여 년을 바다 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걷는 길은 실행위원회의 제안입니다. 모토마치·주카가이역에서 야마시타 공원은 도보 3분, 마린타워는 도보 1분, 히카와마루는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입니다(요코하마시 관광 정보). 히카와마루는 10시에 문을 엽니다. 임시 휴관하는 날이 있으니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큐를 잡다Play

야마시타초에서 간나이역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간나이·이세자키초에 당구장이 모여 있습니다. 항구를 걸은 뒤에는, 큐를 손에.간나이·이세자키초 페이지로 →

먹고 마시다Eat & Drink

거리의 역사와 함께해 온 가게 (게재료는 받지 않습니다)

호텔 뉴그랜드 더 카페

도리아, 나폴리탄, 푸딩 아 라 모드. 이 호텔에서 태어난 요리를 지금도 맛볼 수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머물다Stay

야마시타 공원 앞에는 1927년에 문을 연 호텔 뉴그랜드가 있습니다. 요코하마시 관광협회 공식 사이트에서는 지역을 좁혀 숙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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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걷기

출처 (확인일: 2026년 10월 6일)

수치는 출처 시점의 것입니다. 개관 시간·휴관일 등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방문하기 전에 각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