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는, 예술이다.——물음을 던지는 공 하나의 이야기.

ビリヤードは、芸術である。——問いかける一球の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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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아직 누구도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철학자도, 예술가도, 비평가도——정의하려 할 때마다, 그 정의를 부수는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그 물음과 마주해 보려 합니다.

그 물음의 끝에, 당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뒤샹의 “샘”이 던진 물음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 소변기에 “R.MUTT”라고 서명해 전람회에 출품했습니다. 제목은 “샘”.

당연하다는 듯 출품은 거부되었지만, 이 작품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예술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가, 예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기교도, 아름다움도 아닙니다.
개념을 향한 물음——그것이 예술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뒤샹은 변기 하나로 보여 주었습니다.

감상하는 사람이 “이건 뭐지”라고 생각한 순간, 그 생각 속에서 예술이 태어납니다.
작품은 받아들이는 사람 안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오카모토 다로가 몸소 보여 준 것

한편, 오카모토 다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예술로 향했습니다.

이성이나 개념이 아닌, 안에 품은 에너지의 해방.
삶 그 자체, 충동, 욕망, 고뇌——그것을 숨기지 않고 캔버스에 내던집니다.
보는 사람은 그 압도적인 에너지를 받아, 무언가를 느끼고, 무언가를 생각합니다.

가와사키시 오카모토 다로 미술관을 찾았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작품 앞에 서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름답다거나, 어렵다거나, 그런 평가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무언가가 전해져 옵니다.
그것이 밝은 것인지, 어두운 것인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뒤샹이 “묻는 것”을 예술로 삼았다면, 오카모토 다로는 “느끼게 하는 것”을 예술로 삼았습니다.
어느 쪽도, 답을 주지 않습니다.
받는 이에게 맡깁니다.

작품이 완성된 순간, 그것은 작가의 손을 떠납니다.
어떻게 느낄지, 어떻게 해석할지——그것은 온전히 받는 이의 몫입니다.
슬픔을 표현한 작품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정답입니다.

그렇다면, 당구는 예술인가

여기서 물음을 세워 봅니다.

프로 당구 선수가 공 하나를 칩니다.

그 공 하나에는, 선수의 생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왜 그 공을 골랐는가.
왜 그곳에 수구를 보냈는가.
어떤 마무리를 그리고 있는가——안에 품은 판단과 기술과 에너지가, 큐를 통해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공이 구르기 시작한 순간, 그것은 이미 선수의 손을 떠납니다.

보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왜 저걸 골랐을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싶을지도 모릅니다.
“별것 아니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또한 그 사람의 정답입니다.

공 하나로 묻는다. 받는 이는 저마다의 해석을 품는다.

이것은 뒤샹이 보여 준 예술의 본질과, 놀라울 만큼 가깝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 당구를 예술이게 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당점, 같은 힘, 같은 스핀이라면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같아지지 않습니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 그날의 컨디션, 라사의 상태, 습도, 마음,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배치가 생기지 않는 테이블 위의 현실.

완전한 재현 가능성을 지니면서도,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다.

그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차이” 속에,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보는 일이, 예술 체험이 됩니다.

이것은 음악의 라이브 연주와도 통합니다. 악보대로 연주하면 같아야 할 텐데, 같은 연주는 두 번 다시 없습니다.
같은 악보라도, 악기를 만든 곳, 연대, 보존 상태에 따라 소리가 전해지는 방식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직접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당구는 재즈를 닮았습니다.

재즈의 아름다움은 그 즉흥성에 있습니다.
코드 진행이라는 “물리 법칙” 위에서, 연주자는 그 순간의 감정, 함께 연주하는 이와의 대화, 공연장의 공기에 반응하며, 두 번 다시 같아지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당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은 수구 앞에서, 다음 순간 최선을 고릅니다. 리커버리의 연속——그 즉흥의 아름다움이 재즈 세션을 닮았습니다.

물리라는 악보 위에서, 인간이 즉흥으로 연주한다. 그것이 당구라는 예술입니다.

👉 정답은, 늘 새로 쓰인다.——당구라는 탐구의 이야기.

관전은, 예술 체험이다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받아들인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 또한, 예술 체험의 일부입니다.

친구와 나란히 당구 경기를 보며, “왜 그 공을 골랐을까”를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느낀 것을 꺼내 놓으면, 대화가 생겨납니다.
혼자 볼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해석이, 다른 이와의 대화 속에서 태어납니다.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서서, 옆 사람과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일입니다.

정답 없는 물음을, 누군가와 함께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풍요로운 예술 체험입니다.

당구 관전에는, 그것이 있습니다.

👉 보고, 생각하고, 또 보고 싶어진다.——당구라는 지적인 관전 체험.

그래서, 봐 주셨으면 합니다

프로의 몸짓, 프로의 공 하나, 프로의 생각——그것을 예술로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별것 아니라고 느끼셔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해석입니다.
감동해도, 의문을 품어도, 지루해도——모두가 정답이며, 모두가 당구라는 예술과의 대화입니다.

정답인 해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보고 싶어집니다.

Yokohama Open 실행위원회는, 그런 체험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 Yokohama Open 대회 정보는 여기에서

그리고 오늘은 제54회 전일본 14-1(스트레이트 풀) 오픈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관전은 무료입니다. 주말에, 예술 체험을 꼭 한번.

  • 결승: 5월 17일(일) / 빌리어드 로사(ビリヤード・ロサ, 이케부쿠로)

👉 일본과 해외의 당구 정보를 목적별로 정리했습니다: 당구, 그 깊이를 향하여 (새 소식은 매시간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