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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마감은 모레.
회의가 세 개 잡혔다.
메일은 답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채로, 또 다른 일이 쏟아져 내렸다.
시계를 보았다.
벌써 저녁이었다.
오늘,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머릿속은 시끄러운데, 아무것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 며칠 이어졌다.
마감만은, 어떻게든 끝냈다.
그 돌아오는 길, 기분 전환 삼아 당구장에 들렀다.
큐를 쥐었다.
이 배치를, 어떻게 풀어 갈까.
수구를, 어디에 세울까.
정신을 차려 보니,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일도, 아까의 회의도——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 상태에 이름을 붙였다.
‘플로(flow)’——시간마저 잊어버릴 만큼, 한 가지 일에 몰입해 있는 상태.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고, 깊은 집중과 충만감이 생겨난다.
존(zone)이라고도 불리는 이 상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플로가 생겨나는, 세 가지 조건
플로 상태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도전과 기술의 균형.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불안해진다.
자기 실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닿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난이도일 때, 사람은 몰입한다.
둘째는, 분명한 목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뚜렷한 것.
셋째는, 즉각적인 피드백.
자기 행동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가 갖춰졌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플로로 들어간다.
당구에서는, 그 세 가지가 갖춰진다
‘이 공을, 저 포켓에 넣는다’——목표는, 눈으로 보기에 아주 분명하다.
친 순간에, 들어갔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수구가 노린 대로 움직였는지도, 찰나에 돌아온다.
난이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지금 실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노릴 수 있는 배치를 고를지, 안전한 길을 고를지——그것도 나 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내 차례 동안에는, 눈앞의 한 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일터로, 돌아왔을 때
다음 날, 회의 전에 알아차린 것이 있다.
집중하는 감각을, 떠올리기 쉬워져 있었다.
플로 상태를 경험하면, 그 감각을 다른 장면에서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당구를 친 다음 날에는, 일을 대하는 마음까지 조금 정돈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만으로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사라졌던, 그 두 시간이.
다음 날의 나를, 조금 가볍게 해 주었다.
참고 문헌
- Csikszentmihalyi, M. (1990).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Harper & Row.
- Fong, C. J., Zaleski, D. J. & Leach, J. K. (2015). The challenge–skill balance and antecedents of flow: A meta-analytic investigation.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10(5), 425-446. doi:10.1080/17439760.2014.967799
- Harris, D. J., Vine, S. J. & Wilson, M. R. (2017). Neurocognitive mechanisms of the flow state. Progress in Brain Research, 234, 221-243. doi:10.1016/bs.pbr.2017.06.012





